낯설은 첫만남, busy bee works가 작가 삼인에게 진짜로 궁금한 질문들을 몇개 던져보았다.
그 결과 서정파 홍보람, 신비주의 최경주, 직설적 권민경으로 별명이 붙었다는 이야기.
작가로서 또 관람자로서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어떻게 혹은 왜 작업을 해?
2. 그걸보고 사람들이 뭘 느꼈으면 좋겠니?
3.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
4. 작업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어?
5. 작가로서 사는 건 생계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어때?
6. 자유로운 자기소개
대답을 듣고 나니, 공감가는 고민을 시작으로 아주 다른 작업들이 생겨나는구나 하고 느꼈고, 그래서 산을 오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아. 이 대화로 나는 약간의 외로움을 덜어내고, 또 관람자로서 그림에 왜 그런 이미지들이 나오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
글 양이 많으니 각자 관심있는 질문들만 골라 읽어보길..
자신이 찾는 것에 원하는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자기가 무얼 찾고 있는지를 알게해주는 한 조각의 퍼즐이 되줄거야.
권민경 / bkcandy@naver.com / www.pinkflesh.net 1. 어떻게 혹은 왜 작업을 해? 그림을 그려. 캔버스에 유화작업을 주로 하지. 아크릴도 가끔 쓰고 꼴라쥬, 드로잉도 종종하지만 전시되는 작업은 주로 유화야. 클래식하지? ^^ 어릴 때부터 낙서부터 시작해서 뭔가를 계속 그렸어. 처음에 시작은 매우 순수했어. 뭘 그리는 게 좋아서 시작했으니까. 그러다가 단순히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입시 미술을 시작했지. 예중, 예고에 지원해서 예중은 떨어졌지만, 운 좋게, 사실 독을 품고 준비한, 예고에는 진학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대에 가게 되었어. 그때까지 내 인생은 나름 탄탄대로를 달렸는데, 미대에 진학하자마자 꿈을 잃었어. 어릴 땐 그저, 막연히, 미대생이 되고 싶었었나봐. 그런데 더 이상 진학하고 싶지 않았고, 입시도 지겨웠어. 내가 많이 모범생이었거든. 바람직한, 사회적으로 칭찬받을만한 목표가 사라져 버린 거야. 그리고 스스로 개척할 줄도 몰랐지. 사실 미대에서 작가가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아서, 수동적이었던 나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잘 안 왔어. 대학시절 내내 실패감과 무력감에 빠져있었고,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졸업 후에 그냥 아무 곳이나 취직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어. 무엇보다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어.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도 낯설었고... 한동안의 방황 끝에 ‘내가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배설하고 치유하고 있구나,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림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어! 그래서 결과가 어찌되었건 작업을 해보자, 전시 한 번 해보자, 결심하게 되었어. 결국은 다 자기 행복하자고 하는 거지 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2. 그걸보고 사람들이 뭘 느꼈으면 좋겠니?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몸에 관한 열망과 좌절을 그림으로 그리는 거야. 내가 몸에 콤플렉스가 굉장히 많았었거든. 살, 피부색, 여드름 등등. 난 괴물도 아니고 장애도 없는 평범한 인간인데도 심각하게 고뇌했어.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거야.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이 힘들었어. 지금도 뿌리를 뽑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기긍정을 하려고 노력중이고. 나의 뇌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게 만들었던 이 화두를 다른 사람들도 그 만큼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서로 공감하고 더 나아가 함께 콤플렉스에서 탈출했으면 좋겠어. 나는 무조건 희망을 가지라고 하기보다는 현실을 명확하게 보고 다양성을 추구하기를 바라고 있어. 3.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 나의 생각을 매우 설득력 있게 시각화하는 것. 아직 갈 길이 멀지...중도에 포기하지 않기를! 4. 작업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어? 외롭다. 편안하다. 괴롭다. 즐겁다. 대략 이런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듯해. 현재는 ‘50%의 외로움과 40%의 편안함과 9%의 좌절과 1%의 격한 희열’의 비율의 느낌으로 작업하고 있어. 1%의 ‘격한 희열’은 작업 중에 가끔 찾아오는 만족감과 짜릿함이 뒤섞인 감정인데 아주 중독성이 있어. 그 감정 때문에 지루함도 외로움도 견디는 것 같아. 5. 작가로서 사는 건 생계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어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복을 누리는 대신, 경제 생활면에서는 매우 불안정하지. 일정한 벌이도 없고 가끔 하는 아르바이트는 당연히 박봉에 대우도 좋지 않고, 그나마 대우받는 미술학원 강사나 과외 아르바이트는 기피하는 편이라 사회적으로 고학력 백수 취급을 받지. 사실, 생계를 꾸린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긴 해.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여러 가지로 지원을 받고 있으니까. 작가로서 산다는 것은 명예욕은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지만 물욕까지 채우려면 정말 운과 실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 사실 물욕도 별로 없는데 말이야. 무명 전업 작가의 경제상황이란 거의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인 듯해. 항상 생계를 위한 벌이와 자아실현을 위한 작업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야. 이 두 가지가 통합되면 한시름 놓을 것 같아!! 그리고 필연적으로 혼자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외롭다는 것. 혼자 놀기에 나름 일가견이 있지만 날이 갈수록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 대인 생활과 작업 생활의 균형을 잘 이루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6. 자기소개 나는 1983년 서울 생이야.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을 감고 나와서 엄마가 고생하셨대. 아들이기를 바라셨고 태중에서 발차기도 심했다는데, 나는 딸이었지. 그래서인지, 난 내가 여자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아. 그렇다고 남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중립적인 의미의 ‘인간'을 상상하니 남자가 떠오르네, 아직은 남자들의 세상 인가봐... 그래, 난 페미니스트야. 완벽한 평등을 원할 만큼 이상주의자는 아닌데, 그래도 남녀 따지기 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배려하는 세상을 꿈꿔. 그건 그렇고 이런 중성 뇌를 가진 내가 ‘아름다워야 할’ 여자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애로사항이 좀 있었지. 내 딴에는 세상의 잣대를 무시한다고 외모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았더니 어느새 ‘안여돼’가 된 거야. ‘안여돼’가 뭐냐면 추남, 추녀의 3대 조건-안경, 여드름, 돼지를 뜻해. 이 단어의 출처는 아마도 '디시 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웹사이트일거야. 내 외모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첫사랑(짝사랑)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의 종말과 함께 자괴감은 폭탄이 되어 내 마음 속에서 터졌어. 겉으로 태연한 척 할수록 속은 곪았었나봐. 얼굴도 곪고 마음도 곪는 청춘이 하릴없이 흘러갔어.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다이어트를 감행했고 약 15kg을 감량했지. 그렇게 ‘사랑 받을 만한 나'를 만들기 위해 몇 년을 우울하게 보냈어. 나, 미녀는 괴로워’보고 펑펑 운 사람이야. 그 영화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꽤 애썼다고.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던 중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어. 몸에서 sos를 요청 한 거야. 난 그걸 무시할 정도로 모질지는 않아서 다이어트는 그쯤에서 그만두었어. 대신 그 후에는 패션을 연구했고 멋 부리는 것을 즐기게 되었어(내가 멋쟁이라는 의미는 아니야). '내 스타일’이라는 것을 찾는 과정에서 우울증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어. 그리고 예전에는 항상 살 빠지면 입어야지 생각하면서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사두곤 했었는데 이젠 지금 당장 입고 싶고 편한 옷을 사. 카르페 디엠인가? ‘현재를 즐기라’는 요새 유행하는 격언 있잖아, 그게 옷차림에 녹아든 거라고 볼 수 있겠지. 이렇게 내 뇌가 내 몸뚱이 하나 거두는데 25년이 가깝게 걸렸어. 그리고 내가 내 몸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첫 연애를 하게 됐어. 그건 우연이었을까? 그 시점이 난 참 신기하더라고. 그리고 연애가 끝난 후에도 난 그냥 흐르는 대로, 원래부터 혼자였던, 나 자신으로서 살고 있어. 하지만 애인이 없는 지금, 가끔 유혹에 빠지기도 해. ‘더 예쁘고 더 날씬하면 멋진 남자(혹은 좋은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살 빼고 성형해!’ 솔직히, 항상 고민하고 망설이지.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씨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외모를 갈고 닦는데 그 과정이 너무 외롭고 힘겹다고 느끼는 건 나뿐일까? -그런 고단한 과정을 거치면 과연 행복해지긴 할까? 만족할만한 수준은 어디까지 일까? -나의 행복을 위해 했던 그 행동들이 사실은 타인의 잣대, 미디어의 세뇌에 의해 휘둘린 것은 아닐까? 근본적으로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 속세를 떠나지 않는 이상, 계속 고민할 것 같아. 최경주/ kyungjoo12@hanmail.net / www.kyungjoo.net 1. 어떻게 혹은 왜 작업을 해? 두 작가와 비슷. 어릴때부터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 조금 특이한 건, 어릴 적 트라우마라고 해야하나...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어. 당시만 해도 우리 나라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처럼 미개한 나라로 인식되었지. 언어가 전혀..정말 전혀 안되는 상황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현지 학교를 다니며, 꿀먹은 벙어리로 하루종일 있다가 집에 와선 학교가기 싫다고 울었던 기억이 나. 음..어릴 적 그 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정말 귀중한 추억인 동시에 악몽이기도 해. 너무 웃기고도 서글픈 얘기지만, 약자(Minor)이기에 겪었던 경험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어서 그 때의 느낌이 문득 문득 내 속 어딘가에서 느껴질 때가 있어. 그때 내 유일한 친구는 그림 속 '브루노'라고 공룡이었어. 그림 속에 사람은 없고, 오로지 나와 브루노는 행복하게 놀았지. 지금까지도 그 감성이 이어지는 것 같아. 상황에 따라, 혹은 어쩌면 절대적으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인식하는 나쁜(?) 버릇, 습관. 그냥 그림 그리기는 어떠한 명분을 떠나 그냥 나 자신이지. 한 때 내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중 하나로 치부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달란트라 생각해. 2. 그걸 보고 사람들이 뭘 느꼈으면 좋겠니? 이방인의 감성은 내가 놓인 상황에 의해 만들어져서 조바심, 열등 의식, 강박관념 등 스스로를 옥죄서 작게는 그 상황을, 크게는 삶 자체를 충분히 만끽하질 못해. 그림을 통해 일탈을 꿈꾸기 보단 내 스스로를 똑바로 직시하려 노력해. 굉장히 주관적인 방법(내가 말하는 주문'ABRACADABRA')으로 해탈한다고 해야하나...그래서 작가로서의 자세는 종교에서의 믿음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작은 깨달음을 전달하고 싶어. 너무 미묘하고 사소해서 도외시되는 음파와 같지만, 그들이 모여 어떤 소리가 나오듯. 강한 임펙트보단 관객들이 내 그림을 보고 저마다 꾸준히 무언가를 생각하길 소망하지. 그리고 조금더 욕심을 내자면 난 그림과 제목의 관계를 은근히 신경 쓰는 편인데, 관객이 둘(그림과 제목) 사이의 반전을 느끼길 바래. 3.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 나에게 '재미'는 절실해. 절실한 '재미'는 '그리기'를 통해 만끽하고 있고.. 절실한 재미를 느끼는 그리기로 죽~~살고 싶어. 그리고, 얼마전 친구랑 얘기하다가 죽기전 정말 기똥찬 전시를 한번 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를 많이 한건 아니지만, 언제나 아쉬워...쩝 4. 작업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어? 적어도 나 스스로에겐 명쾌해지는 느낌, 단순해지고 약간의 환각상태. 5. 작가로서 사는 건 생계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어때? 불안한데....불안함 속에서 내 존재감을 느끼고, 궁핍한데....그래서 치열해지는 것 같고, 절대고독한데...작업은 점점 견고해지는 것 같고. 줄타기하는 기분이야.
홍보람/busybeeworks@gmail.com/ www.boramhong.com
1. 어떻게 혹은 왜 작업을 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꿈이 그림 그리고 만드는 것을 온종일 할 수 있는 화가가 되는 거였고 지금껏 해나가고 있으니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때부터 나에게 그림 그리는 것은 나와 잘 놀아주는 친구 같아.
나는 한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보다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해온 건 아닐까 생각했어. 얼마 전 부터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나는 내가 살아있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지를 그림을 통해 찾아나가려고 하고 있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놀면서 사회성을 가꾸어나갈 기회가 없어서 그랬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쩔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그건 내가 세계와 어떻게 행복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어. 그런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니 다 같으면서도 하나하나 너무나 독특한 우리구나 하는 것도 느끼는 것 같고, 나에 따라 상대가 다른 에너지로 반응하는 것도 느낀 것 같아. 내 안에는 아이같이 상처받기 쉽고, 삶의 두려움과 걱정들로 난감해하는 또 다른 어수룩한 자아가 있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그래서, 나에게는 참 아리송한 이 세계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나에 대해 좀 더 느껴보려고 노력해 나가고 있어. 그 과정에서 몸에 대한 관심, 생명의 기원 같은 것에 관심이 생기고 형태와 의지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고. 형태에 의지가 머문다, 혹은 의지에 의해 형태가 생긴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 그런 생각의 바탕 위에서 나의 몸의 형태가 담은 나의 에너지도 더 잘 느끼고 유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 나를 이 세계를 이루는 아주 작은 부분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하나의 큰 줄기로, 생명으로 이해하게 되곤 해. 그래서 서로 연결된 긴밀한 관계에 대해 떠올리게 되고, 나의 존재에 대한 경계를 어떻게 유연하게 이완할 수 있는지, 그래서 다른 모든 것들과 시간, 공간을 나눠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돼. 그래서 관계역학을 떠올리고, 그런 것을 잘 느끼고 배우려면 나 스스로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이완되고 삶에 대한 원초적인 긍정의 순수한 행복감으로 내 에너지의 진행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이 근원적 삶(생명 에너지)에 대한 예찬은 원시문화에 잘 나타나 있지. 그래서 그 근원적인 긍정적인 감정을 따라가 보려고 원시문화나 말의 어원공부, 지도, 역사 공부 등도 하고, 그것에서 느낀 것들을 차근차근히 작업으로 풀어나가며 배우며 하는 중이야. 줄여 말하면, 그림을 통해서 나에 대하여, 세계에 대하여,
그 관계 맺는 행복한 방법에 대하여 단순하고 즐겁게 배워나가고 있어.
이번에는 내가 정말로 즐겁게 한 그림들을 보여줄게.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가장 기본적인 그림 그리기(내가 어릴 적부터 아주 좋아했던)를 통해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의 근원과 내 작업의 근원을 다시 돌아보고 싶었어. 아주 솔직하게 말이야. 마침 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에 인체 크로키를 하게 되었고 중학교 때 교복입은 친구들을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던 그 재미난 크로키에 나는 아주 푹 빠져버렸어.
처음에는 인체의 곡선에 빠져서 모든 것을 선과 그것에서 나온 상형문자, 원시예술과의 연결고리를 본 듯했고. 그 다음에는 생명의 의지로 형성된 덩어리, 그것들 간의 긴장감 있는 조화를 생각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나와 대상이 만나는 순간, 그 표면에서 탄산처럼 퍼져나가는 색들이 재미있어서 한동안은 그것에 푹 빠져 그림을 그렸어. 그러다가 이제는 그 안에서 불타는 에너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춤추는 듯 활활 타고 있는 에너지. 그런 것에 지금은 빠져있어.
2. 그걸 보고 사람들이 뭘 느꼈으면 좋겠니?
나는 내 그림을 보고서 내가 무엇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그 생각으로 부터 받은 에너지를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다시 느꼈으면 좋겠어. 형태는 의지를 담고(의지에 의해 생겨나고) 그것은 에너지를 뿜고 있는데, 그것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음식을 소화해 내 몸에 필요한 에너지로 바꾸어 쓰는 것처럼. 나의 그림이 좋은 에너지가 되어 보는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필요한 무언가를 섭취했으면 좋겠어.
여기 내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들은 사람의 몸을 그린 그림이고, 그 안에서 내가 전하고자 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였던 것 같아. 몸을 그리다 보면, '아. 몸도 역시 의지대로 생겨진 것, 그 안에 담겨있는 활활 타고 있는 생명의 불꽃' 그 불꽃의 모양, 그 불꽃의 색 등을 느꼈던 것 같거든.
나는 이 그림들을 그리면서 그림 안에서 가장 조화로운 어떤 에너지가 긴장감 있는 균형을 이루는 그 순간에 멈춰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아. 아름답고 추할 것 없는, 말을 걸지도 건네지도 않는, 있는 그 상태, 생명의 의지를 내뿜고 있는 몸. 그리고 그것에서 어떤 부드러움, 따뜻함, 생명, 환해지는 느낌, 삶의 의지 같은 것을 건져 올리고 그림이 그림다우며 아름다운 상태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 같아.
3.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
글쎄. 내가 지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되돌아보면 앞으로 한가지의 길로만 가지는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어 :) 근데, 무게 중심은 비슷한 것 같아. 나는 아까 말 한 것처럼, 나와 이 아리송한 세계와의 관계를 관찰해 나가면서, 내가 나름대로 알아차린 것들, 혹은 떠오르는 실마리 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나갈 것 같아. 그래서 정말 정확하게 나의 생각, 인식을 표현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더 깊이 생각하고 거기서 연관된 다음 것을 깨달아 나가 그림을 통해서 내가 세계와 완전히 통해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행동하게 되면 좋겠어.
4. 작업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어?
나는 이번에 그림을 그리면서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 없이, 순전히 그 순간에 보고 느끼고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에 온통 집중 했던 것 같아. 물론 그런 순간이 오래가진 않지만, 그런 반짝이는 파편들을 다시 본 것 같아. 꼭 어렸을 때 온통 집중해서 종이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손을 놀리던 그 때처럼.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내가 녹아서 내가 그리려고 하는 것에 스며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 그리고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손에 잡힐 듯 상상하고 그려왔으면서도 꼭 미숙한 선장처럼 쉽게 길을 잃고 자기 자신조차 누구였는지 잊어버리는 그런 상황, 이 헤맴이 끝나면 다시 별것 아니었던 것으로 결말이 나버리고 말 것 같아 계속 길을 잃은 채로 남으려 하는 상황 자체에 매혹된 것 같아. 그래서 더 깊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 더 안으로 밖으로 감각을 곤두세우는 것 같아.
그림은 나를 쓸모 있다고 느끼게 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그림은 내가 나와 대화하는 방법이고, 내 느낌을 (문장으로 보다는 형태나 형상으로 생각이 떠오르니까) 무엇으로보다 그나마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인 것 같아.
작업을 하면 내가 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것과의 관계는 보이지 않고 일단은 작업하고 나와의 그 만남의 순간만이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면 즐겁고, 몸은 힘들어도 그 순간 아주 다른 시 공간에서 내가 나와 세계와 만나고 융합해 서로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을 느껴. 물론 그 몰입이 흐려지는 순간에는 별 잡생각이 다 나지. 이거 해서 뭐하지? 나는 정말 재능이 없나봐. 선하나 제대로 긋는 것조차 평생가도 못하는 걸 지금 하고 있는 이런 기본 다지기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 다들 날고 기는 판에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라는 둥. 갑자기 배가 고파지거나, 갑자기 손톱이 깎고 싶어진다거나 등등 일들이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막상 시작은 못하고서 '아. 어떤 재료만 있으면 할 텐데, 작업실이 있으면 할 텐데.. ' 등 주위만 맴을 돌기도 하고.
근데 막상 그런 모든 두려움의 커튼을 통과해서 작품과 면대 면으로 만나고 나면 늘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 있어. 저항감도 있고.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것은 나랑 씨름을 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림이 생겨나는 것 같이 느껴져. 또 어떤 때는 그림이 나에게 수업을 해주는 기분도 들어. 한번 해서 잘 되었으면 나는 그걸 어떻게 다시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러면 그림은 혀를 쯧쯧 차면서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을 보지 말고 지금 당장 자기 몸에서 손 떼고 한걸음 물러나 자기를 마주보라고 꾸중을 해. 그럼. 아차 싶어 한참 그림을 바라보고 죄송합니다 하지. :) 이전에 아주 계획적으로 작업을 해 와서 그런지(주로 판화 작업을 하다보면 우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하기가 쉽지 않고, 계획을 갖추어 해야 하는 공공작업들도 그렇지.) 지금 나는 이런 프리 드로잉에서의 느낌을 아주 선명하게 느끼고 있는 듯 해.
5. 작가로서 사는 건 생계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어때?
작가로서 사는 건 힘들지만 아주 좋아. 우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림을 그리면서 더 잘 느끼고 공부해나갈 수 있어. 어떻게 보면 사제 철학, 사제 종교라고도 생각해 :) 가끔은 짝사랑 하는 거 같은 기분도 들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나와 나의 느낌,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에 있고 시공간의 대부분은 그렇게 짜여 있잖아. 온전히 나를 위해 비워진 시간과 공간을 만나는 것이 늘 두렵고 안절부절 못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그것 또한 특혜인 것 같아. 대신 나를 통해 전체를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려야 하겠지.
나는 내가 무언가에 더 몰두해서 작업을 해나가면서 나의 세계는 점점 자라나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부분은 여전히 자라지 않는 것, 그래서 나의 세계와 내 밖의 현실 세계와의 균형이 점점 더 틀어지는 것을 느껴. 그리고 그것을 주위(가족이나 미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정해 줄 수 있도록 하려면 최선을 다해 작업을 해야 하고 또 세계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나 그 사람을 통해 배우고 그래야 하는 것 같아(이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안돼서 많이 노력이 필요해).
생계를 위해서 예전에는 아트상품을 만들어서 팔고, 판화를 찍어 팔고, 무대미술을 하고, 일러스트를 하고 그랬어. 그것도 모두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이었는데 지속되지는 못했어.
아마 부모님과 함께 살고 그러니까 그만큼의 생계에 대한 절박감이 없어서 그랬겠지.
나는 작년에 모든 아르바이트를(강의를 나가는 것) 다 그만 두었어. 그 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그때 했던 메모 중에 '나 밥 조금만 먹을게 평생 그림만 그리면 안될까?'를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너 이때 간이 부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고나면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그렇진 않고,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다 쓴 후에 새로운 재료를 산다는 약속을 가지고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어. 최소한의 경제활동으로 어떤 에너지도 낭비 없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 상대적인 결핍감이 들기도 하지만 물건이 많아지면 잘 챙기지 못하고 오히려 모자라면 감사하며 잘 쓰게 되는 것 같아. 또 요즘 하는 작업들이 확장을 잠시 멈추고 내 안으로,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라 그런 것과도 잘 맞는 것 같고. 지금은 이렇게 지내는 게 괜찮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어. 나는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싶어. 그게 좋은 것 같아. 또 더 싼 가격으로 그림을 팔 수 있으면 좋을 것도 같아 요즘에는 그림 원화 말고 이미지를 프린트해서 파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어렸을 적에 내가 가지고 싶은 대가들의 그림을 엽서로라도 가질 수 있으면 나는 행복했던 것 같고 그 그림의 감동은 전혀 줄지 않았던 게 떠올라. 내 그림이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 있을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면, 그 때는 가능할 것 같아.
6. 자기소개
나는 1978년 10월에 태어났어. 4살 쯤 인가 할머니 집에 갔다가 뽑기 아저씨를 발견, 그 아저씨를 찾아 나갔다 길을 잃어 미아가 될 뻔 했어. 울고 있는 나를 한 아주머니가 경찰서에 대려다 주셨고, 덕분에 나는 미아가 되지 않을 수 있었어. 내가 유치원 다니던 6살 때 집은 비가 새지만 마당은 넓은 그런 주택에 살았어. 지금 홍대 카페 사티로스가 있는 자리야.(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그 집을 다시 사고 싶은데 주변이 다 변해버려서 이젠 어쩔 수 없게 되어버렸어) 늦여름이면 오빠와 손잡고 지금 주차장 거리가 되어버린 해바라기 밭을 돌아다니며 씨를 따먹었던 기억이 나. 어렸을 때 아빠가 사우디로 일을 나가셔서 (중동의 일꾼!) 집에는 나랑 엄마랑 오빠, 이렇게 있었고 오빠가 나를 아주 잘 챙겨줘서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어. 유치원에서 그림대회에 나가 최고상을 탄 것이 내 생애 최고로 잘 나가는 때였고 그 이후로는 상이란 것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어. 근데 내 꿈은 아마 그때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굳어진 것 같아 :)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구구단을 왜 외워야하는지 모르는 나를 엄마가 따끔하게 혼내셨어. 그게 아마 처음으로 호되게 혼난 기억이야. 난 그때까지 공부를 왜 해야 하고 맞춤법을 왜 하나로 써야하는지 몰랐고, 시험공부를 왜 하는지도 몰랐어. 그냥 놀기에 바빴지. 그리고 미술학원에 놀러 다니고. 입시미술을 하면서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되니까 그것도 어떻게 해야 잘 되는지 알게 되고 꼭 하나의 행위만 반복하는 명상을 하듯 즐기게 되었던 것 같아.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계속 연극을 했어. 그때 민중가요도 배우고, 풍물도 익숙해지고, 극을 만들고 하는 것도 익숙해지고 홍보물 같은 것 만드는 것도 시작했어. 중학교 2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 나는 울면서 부모님께 나도 미국에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정말 그때는 가고 싶었어. 물론 갈 형편은 안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디자인을 할까 서양화를 할까 무척 고민. 거기서 한번 또 길이 갈린 것을 느껴. 대학에 들어가 미대 극예술 연구회에 들어가서 신나게 연극을 하면서 놀았어.
그때 만난 반짝반짝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어.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 그러다 인터넷 게임 열풍에 빠진 그 친구는 나보다 스타크레프트를 더 사랑하게 되어 헤어지고 :)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유학을 가고 싶어 고민하다 내가 돈을 벌어 가야지 생각하고 직장에 들어갔어. 근데 적응을 못하고 나와서 일 년 동안 야외에서 공공미술을 한다고 혼자서 무던히 했던 것 같아. 그러다 대학원을 선택하게 되었고, 음악을 하는 친구를 만나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 그 친구를 통해 아름다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 친구들과 잊지 못할 기억들도 많이 만든 것 같아. 그 친구를 통해 스쿠버다이빙을 하게 되었고, 지금 제주도에서 지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친구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어. 몇 명의 동행과 몇 개의 갈림길을 지나 지금 여기에 온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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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는 산의 초입 정도인것 같아.
가끔 나무 사이로 멀리 친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해.
길에서 만난 친구들로 외로움을 조금 덜어냈어.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산을 오르는 방법,
그럼 오늘도 각자의 방법으로 한발자국씩 충실히 산에 오르길.
- 산을 오르는 무수한 방법- 인터뷰를 정리하며
2009 06 28 busybeeworks 홍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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