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바깥은 약간의 우울모드.
옷 가게에 걸려 있는 봄 옷만 생동생동.
그 생생함이 부러워 남대문 꽃 시장에 들렀다.
길목엔 온통 단 것을 사는 사람들로 붐빈다.
꽃 시장 안을 휘휘 걸어 다니며 탄성을 지르다가 양귀비를 발견했다.
구겨진 습자지 같은 꽃잎. 그 안에 노랗게 발린 분.
한 단을 사다 식탁 위에 꽂아 놓고선 내내 바라본다.
머리가 둘로 갈라져 모자가 톡 하고 떨어진다.
좁은 곳에 웅크리고 있어 구겨졌던 꽃잎이 조금씩 숨을 쉰다.
마냥 그 앞에 지키고 앉아 오후가 되는지도 모른다. 봄 오후의 햇살.
방안에 불을 모두 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도 꺼버리고, 그 편이 더 좋다.
아직 바깥은 약간의 우울모드.
지금 내 방안에 햇살이 그림자로 궤도를 그린다.
양귀비도 그 궤도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 따뜻함. 그 고요함으로 가득한 방안에,
나를 가만히 가져다 놓는다.
그 공기를 흩어놓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글을 쓴다.
초봄의 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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