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3 위안의 형태들
자연에서 만난, 나를 위안해 주었던 구름, 바위, 섬, 바람, 노을, 언덕, 물결들.
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나름의 균형을 잡고 있다. 나를 지탱하는 것들은 가족, 아이들, 집. 그리고 짧은 순간이라도 작업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한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림 그리는 일. 이토록 연약한 세계에서 나는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존재한다. 위안이 필요한 수많은 순간들. 나는 결코 당신이 어떤 것을 견뎌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처럼 누구도 내가 무엇을 겪어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터이다. 화살처럼 와서 박히는 수많은 정신적, 정서적 충격에 흔들리고 넘어지며 다시금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고 시선을 멀리 던져 수평선에 걸린 구름과 섬을 바라본다.
인간 사이의 고민이나 머릿속을 휘젓고 가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마주했을 때 자연의 현상들, 형태들은 묵묵히 어떤 것을 보여준다. 법칙이랄까 이치랄까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느껴지는 형태로. 당장의 해답이라기보다는 그 전체의 과정을 깨닫게 한다. 물과 뭍. 용암과 물. 시간의 흐름. 반복되는 순환. 태어나고 생명을 낳고 키우고 늙고 사라짐. 기다림과 잊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관계 등. 이 모든 관계들이 돌아가는 평범하고도 현란한 와중에 자연에는 생에 대한 의지가 가득하고 매 순간 그것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한다.
2002년. 장소에 담긴 기억을 나누는 공동체 미술 프로젝트 《마음의 지도》를 만들어 2007년까지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후, 쉬기 위해 찾았던 2008년 미국 버몬트 아티스트 레지던시. 밖을 향했던 질문들을 내 안으로 향하게 했던 큰 힘은 자연이었다. 텅 빈 시간, 텅 빈 공간. 그 안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된, 자신으로 향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나 자신과 다른 생명들이 연결된 느낌에 닿았고 달라진 시점으로 다시 나와 세계의 관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애씀에 대한 공감과 긍휼함이 느껴졌고 그것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그 한 가닥으로 현실과 자연이 은유적으로 뒤섞인 구상적 이미지를 작은 수채화와 파스텔로 그려《흔들리는 자아, 흔들리는 세계》(2008)전을 열었다. 다른 또 한 가닥은 난데없는 추상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추상적 이미지. 그 전까지 추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뭘 표현하고 싶어서 이런 것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거지? 했던 나였는데.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데 어찌 할 바가 없으니 그렇게 한 것이구나. 어찌 담아볼 수 없는 자연이 갖는 느낌을 내 나름대로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 자연을 관찰하면서 쌓이고 추출된 단순한 형태가 머리에 떠올랐고 그것이 추상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린 이미지는 물과 물이 서로 닿아 물결이 이는. 물과 뭍의 관계를 그린 포물선과 같은. 화산이 솟아오르는 느낌을 그린 봉우리 같은.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를 감싸고 지나가는 바람의. 엄마의 품과 연결되는. 부드럽게 감싸는 모양 등이었다. 2009년 제주 서귀포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에서 이런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나의 머릿속에 맴돌던 관계에 대한 질문들도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이 그것에 답을 알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형태 혹은 존재는 의지를 갖는다. 의지가 고스란히 발현된 형태들. 인체, 생명, 세포, 생물의 형태들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해진다. 중심을 감싸는 둥근 형태는 태초의 생명을 떠올리게 한다. 연약한 것들은 몸을 안으로 말기 마련이다. 공격하는 것들의 끝이 뾰족한 것처럼. 이런 형태와 관련된 이미지는 말에서도 느껴진다. 위로의 말은 둥글며 공격의 말은 날카로운 것처럼. 형태들은 의지를 내포하고 있고 나는 그 형태를 보며 형태의 의지를 읽으려 애쓴다. 《상상-생각의 꼴》(2009) 전시는 그렇게 시작된 작업들로 꾸며졌다.
우연은 나의 작업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이다. 자연 안에서 관찰되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따라 그리면서 조금씩 우연에 맡기는 시도를 해보았다. 내가 어쩌지 못할 부분은 우연에 맡기는 것. 우연의 형태들은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나는 그 우연이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형태들을 보며 ‘존재한다’고 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의 난만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무런 외침 없는 형태들.
우연과 즉흥은 서로 맞닿아 있다. 내가 우연으로 가기 위해서는 즉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은 나의 손이 무위로 움직이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된 아름다운 형태들을 바탕으로, 의도함과 의도하지 않음 안에서 조화로움을 찾아보는 실험을 해보았다. 나와 잘 맞았던 것은 즉흥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즉흥 드로잉이었다. 음악과 그림이 서로에 의해 동시에 생겨나는 완전한 몰입의 과정은 내가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그럴 때 그림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순순하고 난만하다.
균형 잡기. 사실 그림의 주제라기보다는 나의 매일의 삶이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계속 진행되고 유지되는 관계는 나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 균형 잡기 위해서는 유연함과 여유로움이 필요하고 나는 그 상태를 갈망한다. 우연에서 배우기.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느끼기. 그것이 우연과 즉흥 작업을 통해 내가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균형 연습. 화면 안에서 균형 잡힌 형태들을 표현하기 위한 연습으로 추상적인 드로잉과 함께 인체 드로잉을 계속해오고 있다. 인체를 느껴지는 대로 그리면서 나는 인체 안에 조용히 타고 있는 생명의 불꽃을 느낀다. 화면 안에 균형을 생각하며 언제 멈춰야 할지, 언제 더 나아가야 할지 연습하곤 한다. 완전한 몰입과 자유로움, 우연과 만난다.
존재하기. 제주에서 볼 수 있는. 띄엄띄엄 따로 떨어져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을 보면 그것들이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내가 섬인 것처럼 다른 사람도 섬인 것 같다. 그 안에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가 운용되고 있는. 나는 섬과 섬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 서로의 존재로 물결이 바뀌고, 그 물결에 또 서로의 모양이 바뀌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과 그 존재들이 함께 있는 풍경을 본다. 하나의 장 안에서 싹을 틔우고 꽃피우고 시들어가며 서로의 안위를 묻는. 이러한 하나하나의 존재, 모양, 존재방식이 나에게 위안으로 다가온다. 위안의 형태들. 우리가 섬이라면 세계는 우리를 품고 있는 바다다. 한없이 외로운 섬이면서도 서로의 영향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나는 자연의 현상들을 통해 내 주변의 관계들을 돌아보고 공명한다.
존재하기- 위안의 형태들. 나의 삶에서 느껴지는 존재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여 자연의 형태들이 반영된 추상적 형태로 전달하여 감정을 어루만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이차원의 드로잉 형태들을 무게와 질감을 갖은 부조의 형태로, 종이의 바탕에서 자유롭게 형태 자체로 존재하게 만든다. 수많은 깎음과 갈아냄과 어루만짐으로 완성된 나무 형태 위에 무수히 긋거나 문질러져 만들어진 선. 머릿속의 이미지를 실제로 존재하게 하는 이 과정이 나에게는 파편화된 일상 중에 깊은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또한 나를 존재하게 한다.
처음 자연이 나에게 준 것처럼. 형태는 의지를 갖는다. 내가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만든 이 뭉툭하고 둥그런 외침 없는 형태들이 정신적, 정서적 충격으로 흔들리는 다른 존재들에게 작으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머리 위로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와중에
작품을 보내놓고 마음을 졸이면서도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마음속에 들끓는 걱정들을 바라보는
여전히 요원한 유연함과 여유여
2023.08.24 홍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