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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그림 2010 -

나는 지금 해군기지문제로 갈등이 심한 제주도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곳에 도착해서 해군기지가 들어서고자 하는 구럼비라는 해안의 아름다움을 직접와서 느껴보니 멀리서 글로 전해지는 것과 다른 차원의 힘을 느꼈다. 구럼비는 긴 시간동안 존재해왔고, 그 공간에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생생히 존재한다. 나는 그 존재하는 것들의 목소리를 듣고 만지고 냄새맡고 생생히 움직이는 것을 보며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내가 아는 것을 넘어선 거대한 어떤 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 찰나의 느낌을 잡고 더 오래 느끼고 싶어 나는 자연에서 발견된 이미지를 작업에 담게 되었다. 이 순간은 예측할 수 없고 내가 그런 우연과 순간적인 발화를 받아들일 때 생생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안팍의 균형이 맞았을 때 그 순간 서로에 의해 반응된 결과물은 의도함을 넘어서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서의 힘을 갖는다.

 나는 요즘 주로 바위를 먹으로 탁본한다.나는 바위의 표면에 세겨져있는 시간과 읽혀지지 않는 무늬들 안에서 무수하게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난다. 그것은 지금의 언어로 해석되지 않은 이 곳에 살다가 간 많은  존재하는 것들의 목소리 혹은 지금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선계의 풍경같다. 

그리고 바위의 표면을 캐스팅하거나 풍경안에 가만히 서서 그 시공간의 소리를 듣고 나의 목소리로 나의 존재도 여기 시공간에 다른 소리내지 않는 존재들과 함께 있음을 비디오로 찍기도 한다. 이 행위들은 한 순간에 존재하고 자연에 무엇을 남기지 않도록 한다. 

바위의 표면의 무수한 다공질이 표면처럼 자연에서 발견되는 반복되는 이미지들에 나는 흥미를 갖는데 그 읽어낼 수 없는 무늬속에서 나에게 보이는 것을 찾으려 더 오랜 시간 그 이미지를 들여다 보게 되곤 한다. 이 반복적이면서도 다른 무늬에서 나는 나를 포함한 인생의 패턴을 보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개체에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수순들은 변함이 없는데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사건들은 다양하게 드러난다. 경험은 다 다른데 다 다르면서도 같은 것, 어쩌면 우연도 필연의 과정을 위해 있는것 같다. 

 내가 알 수 없는 확정성과 비확정성의 소용돌이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큰 흐름속에 나도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은 어떤 시기에도 흐르는 물처럼 지속된다. 그것은 생명을 갖은 모든 것이 나누고 있는 입장으로 거스를 수 없다. 그 안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모든 각각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착이 생긴다. 그럴때 나는 모든 것이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전체이며 동시에 하나 하나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 마음에서 나는 머리로 그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망하다가 불연듯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만져보고 쓰다듬어 볼 용기가 생긴다.

 접촉으로 나는 대상과 동등한 입장에서 최고의 애정을 표현한다. 동의와 부정과 설득과 인정의 과정을 넘어서는 그 촉감적 관계를 나는 더 오랜 것이며 더 오래 갈 것이라 믿는다.나는 그래서 심연을 들여다 보려 살을 해집고 들어가기 보다는 그 표면에 세겨진 시간의 흔적과 존재함이라는 온기를 느끼며 같은 입장에 서보고자 한다.

구럼비 바위를 거닐면서 처음 만난 바위가 이 바위다. 처음으로 두드려 바위와 함께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바위가 이 바위다. 지금은 그 위에 삼발이들이 가득 놓여있거나 폭파된 후 건물이 들어서있을지 모르겠다. 처음 이 바위위에 종이를 놓고 두드리고 있을 때 한 분이 넌지시 그 그림 참 좋다고 얘기해주었다. 한참을 나와 바위와 그분과 그림 이렇게 함께 있었다. 

매일 새벽 5시경 일어나 날씨를 느끼며 구럼비 바위로 갔었다. 마음을 비우고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바위들이 있었다. 그럼 그 바위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 고길천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 

한지에 하다가 조금 더 큰 바위를 담고싶어 이리저리 찾던 중 천에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는 나를 동대문종합시장 깊숙한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 곳에는 온갖 종류의 실크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제주로 돌아와 매일매일 바위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5시부터 8시 정도까지. 그리고 저녁 5시부터 해질때 까지. 뜨거운 햇볕에 내 등도 바위처럼 달궈지면 근처 강정천에 은어들과 함께 몸을 식혔다. 

옆 방에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든 '마음의 지도 - 제주 강정' 사진과 인터뷰 자료가 모빌로 설치되었다. 

붉고 푸른 초가 조용히 타서 바닥에서 엉키고 뒤섞인다. 그 뒤에 종이에 찍은 구럼비 바위를 걸었다. 

자연과 함께 그림에 지문과 스탬프, 라인으로 다시 드로잉을 했다. 

흑과 백을 바꾸어보니 불꽃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한 '마음의 지도' 그리고 '자연과 함께 그림 씨리즈'를 대전 창작센터, 경남도립미술관, 평화박물관, 부천 스페이스리, 아트스페이스 씨 등에서 선보였다. 그리고 2012년 겨울 '마음의 지도' 책을 완성해 다시 강정마을에 돌아와 전시를 열었다.  함께했던 모든 주민분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딱 지금같은 날씨의 하루였다. 아침 맑고 설레는 마음으로 조촐한 재료를 가방에 넣고 소풍가듯 구럼비에 갔었다. 

바위가 그려내는 풍경에 넋을 잃었던 그 순간들이 그립다. 

구럼비를 기억하며 2014. 여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마음속에 있다. 

​구럼비를 기억하며 2014.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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